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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려의 리더십’ 이 통했다

헤럴드경제 | 기사입력 2008.08.25 17:01



女핸드볼 임영철 감독 > 종료1분전 노장에 출전기회

야 구 김경문 감독 > 1할대 이승엽 믿고 끝까지 4번

女 양 궁 문형철 감독 > 항암치료 미루며 선수들 독려

한국과 헝가리의 2008 베이징올림픽 여자 핸드볼 3~4위 결정전이 열렸던 지난 23일 오후 베이징 국가실내체육관.

경기 종료 1분이 채 남지 않은 상황에서 한국은 헝가리를 5점 차로 크게 앞섰다. 누가 봐도 동메달은 확정된 상황. 그런데 갑자기 한국 측 임영철 감독이 작전타임을 요청했다. 이런 상황에서 마지막에 작전타임을 부르는 것은 상대팀에 대한 예의에 어긋나는 행동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임 감독의 작전타임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그는 곧 선수들의 이름을 한 명씩 부르기 시작했다.

"영란이, 순영이, 성옥이, 정희, 정호, 그리고 일곱 명이잖아. 필희, 정화 들어가." 문필희안정화를 제외하고 모두 서른을 훌쩍 넘긴 고참들이다. "마지막은 너희가 장식해라"는 임 감독의 말에 아줌마 선수들은 물론 시청자들도 펑펑 울었고, 베이징판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은 그렇게 진한 감동을 주고 막을 내렸다.

경기마다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명승부와 사상 최고의 성적으로 17일 동안 국민들에게 '감동의 드라마'를 선사한 올림픽대표팀의 선전 뒤에는 대표팀 감독들의 보이지 않는 리더십이 숨어 있었다. 30대 노장 선수들을 이끌고 지옥훈련을 거듭했던 임 감독은 별명이 '독사'일 정도로 카리스마와 승부욕이 강한 인물. 그러나 그는 동메달이 확정되는 감격의 순간을 코트를 떠나는 노장들에게 맡겼고, 마지막 1분을 남기고 그가 보여준 '배려의 리더십'은 선수들과 국민 모두에게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았다.

쿠바와 미국 일본을 연파하며 야구 대표팀의 전승 우승을 조련한 김경문 감독은 '신뢰의 리더십'의 본보기다. 각 프로팀과 해외파에서 선발된 각양각색의 선수들을 하나로 똘똘 뭉치게 만들 수 있었던 배경에는 선수들에 대한 무한신뢰가 있었다. 예선전 타율 1할대의 이승엽을 끝까지 4번 타자에 기용하고 20대 초반의 김광현과 류현진이 안타를 맞고 위기에 몰려도 김 감독은 이들에 대한 믿음을 접지 않았다. 그의 이런 철학은 다른 고참 선수들에게도 좋은 자극제가 됐고, 뒤늦게 합류한 투수 윤석민도 쉽게 적응할 수 있었다.

지난해 12월 갑상선암 3기 진단을 받고 올 초 암 절제수술과 항암치료를 거듭하면서도 베이징행을 고집했던 문형철 여자 양궁 대표팀 감독은 '희생의 리더십'의 결정판이다. 그는 "치료만 잘 받으면 살 만큼 살 수 있다"며 올림픽 이후로 수술을 미뤘고, 결국 여자 양궁 단체전 6연속 금메달이라는 금자탑을 세웠다. 이밖에 무릎 수술을 연기하며 여자 역도 대표팀 뒷바라지에 열중한 김도희 코치와 장미란과 윤진희의 따뜻한 언니였던 고(故) 김동희 코치 역시 살신성인의 투혼을 보여준 대표팀의 지도자들이다.

올림픽 기간 중 대표팀 감독들이 보여준 이런 지도자상에 대해 전문가들은 비단 스포츠뿐 아니라 정부와 정치권의 지도자들도 본받아야 할 부분이 많다고 지적한다.

김민전 경희대 교수(교양학부)는 "감독이 나서지 않고 선수들에게 맡기는 김경문 감독의 '믿음의 리더십'은 정부를 운영하는 데 있어서도 시사하는 부분이 많다"면서 "대통령이 직접 나서기보다는 각 부처가 자기 스스로 역할과 몫을 다할 수 있도록 신뢰를 갖고 믿어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안현태 기자(popo@herald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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